늦은 밤 마을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뒷좌석에서 2명의 남자가 만화책 "원피스"와 "기생수"에 관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원피스"는 앞의 몇권을 보다가 너무 유치해서 관뒀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와 여기저기서 방영해주는 덕분에 뒷얘기는 웬만큼 알고 있었다.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 덕분이다. 


"기생수"는 재밌고 봤고 작품성이 있다고 생각되서 둘의 얘기에 속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말하는 투가 들떠있는 마음을 약간 억누르는 듯한 착한 오덕후들 같은 느낌이라 중학생이나 고1쯤 된 친구들이라 추측했다. 


제일 뒷좌석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중고생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리니 자리는 비어있었다. 다시 버스 후문쪽을 바라보는데, 머리에 새치가 있는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의 아저씨가 중1이나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다시 기생수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놀라운 부자지간이었다. 엄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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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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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아침에 작고 재빠른 발걸음소리가 나 마루에 나가보니 조카녀석이 선물상자를 뜯고 있었다. 


나를 한 번 흘끗 쳐다보고는 다시 열심히 포장지를 찢어내고 있었는데, 얼마나 열심인지 신기해서 가까이 가 봤다. 


자기 몸의 절반 정도 되는 상자에 "로드세이버"라고 써있는 로봇 장난감이었다. 


"어.. 싼타할아버지한테 소원을.. 빌었는데 어.. 싼타할아버지가 갖다주셨어"라고 중얼거리는데, 아직은 싼타할아버지가 어딘가 있는 존재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웃음을 참느라 잠시 몸이 경직됐었는데, 연이어 나온 조카의 투정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두 개 빌었는데, 하나만 주네. 한 개는 오늘 저녁에 다시 빌어야겠다."


주저하는 말도 없이 또박또박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하는 게 마냥 귀엽다. 


장난꾸러기에 욕심쟁이지만, 그런 순수함이 그렇게 좋기만 한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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